
조윤철 삼정식품 대표가 주인공 맡아
출연진 모두 ‘연극초보’ 시니어들
(사)한국생활연극협회 서울지회 창립기념극
현천행 지회장 “성공적인 인생2막 응원해”
추석 연휴가 오늘(18일)로 끝나 아쉽지만 곧 대학로에서 볼 만한 연극이 개막한다.
풍자와 해학이 깃든 고전소설의 백미 ‘배비장전’이 오는 20~22일 대학로 드림시어터(☎010-2218-3888)에서 매일 하루 두 번씩(오후 2:30/5:00) 공연된다.
왼쪽부터 기생 애랑역 정서연, 주인공 배비장역 조윤철, 해설 강춘향(한국생활연극협회 서울시지회 이사), 예술감독 현천행(한국생활연극협회 서울시지회장) © 실버종합뉴스
‘배비장전’은 조선후기에 지어진 작자미상의 고전소설로, 당시 지배층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으뜸인 작품이다. 따라서 대학로 무대에 종종 오르는 ‘단골’ 이지만, 이번 공연은 조금 특별하다.
7년 역사를 가진 사단법인 한국생활연극협회의 서울시지회(지회장: 현천행 극단서울무대 대표) 창단작품이기 때문이다. 작품을 총괄하는 현천행 서울시지회장은 “아마추어 시니어들의 인생2막을 열어준다고 해서 시작했다”며 “연극의 ‘연’짜도 모르는 사람들이 발성, 화법, 걸음걸이 등등 하나하나 배워가며 만들어가는 모습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번 ‘배비장전’은 출연자들 모두 50대 이상 ‘시니어’인데다가 연극이 처음인 아마추어다. 다만 주인공을 홀리는 기생 ‘애랑'(정서연 특별출연)만은 어릴 적부터 수 십년 연기내공을 쌓은 경력 배우다. 모든 배우들이 연기에 서툴면 관객의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점을 고려했다.
현천행 지회장은 “날은 폭염이고, 내가 지금 뭐하고 있나…처음엔 그랬다”며 “그런데 요즘 보람을 느낀다. 갓난아이가 걸음마 하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랄까”라고 회상했다. 그는 1970년 영화 ‘그 여자에게 옷을 입혀라’로 데뷔한 50년 경력의 베테랑 연기자로 1982년 극단 서울무대를 창단했다. 1996년부터 20여년간 서라벌연기예술학원을 운영하며 양성한 후배들 다수가 지금 대학로와 방송가에서 왕성히 활동중이다.
현 지회장은 “시니어 아마추어 연극인들이 마음 깊숙이 숨겨왔던 꿈을 이뤄 성공적인 인생2막을 만들어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 주인공 ‘배비장’ 연기하는 조윤철 삼정식품 대표
“연기 연습하며 ‘인생3막’ 열어가요”
조윤철 삼정식품 대표의 前 명함은 (사)한국마트협회 부장 이었다. 삼정식품 대표로써 비빔소스 ‘산두리’를 제조공급한 지는 10년이 넘었지만, 사업이 정체기를 겪는 동안 잠시 업을 떠나 있었다. 최근 다시 돌아와 본격적인 도약을 앞둔 그에게 ‘배비장전’은 그야말로 인생2막으로 통하는 문(門)인 셈이다.
지난 4일 혜화역 주변 모 커피숍에서 그를 어렵사리 만났다. 수염을 기르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그는 분위기가 예전과 사뭇 달라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다.
주인공 배비장 역을 맡은 조윤철 삼정식품 대표. 연극이 생전 처음인 그는 연극연습을 하며 인생2막을 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본업인 비빔소스 제조사업이 궤도에 오르면 ‘인생3막’을 열어갈 것이라고. 올해 지하철 무임승차 연령 65세인 그는 은퇴하는 40후반~50대들에게 “미리 준비하라”고 조언했다. © 실버종합뉴스
-연극을 언제, 왜 시작했나.
친구 권유로 지난 5월말 시작했다. 매주 수목금토 나와 연습한다. 사업이 몇 개월 버텨야 하는 힘든 과정에 있었는데, 스트레스에 매몰될 것 같아 차라리 이 시기를 다른 쪽으로 눈을 돌려 성장하는 계기로 삼자고 생각했다. 마침 친구가 권유해 흔쾌히 시작했다.
-해 보니 어떤가.
주인공 역할이라 대사가 많아 외우느라 진땀이 난다. 전혀 모르는 세계인데, 생각 외로 자신감이 생기더라. 이달 공연이 끝나면 제 사업에서 준비해 놓았던 것들이 성사되면서 새롭게 펼쳐갈 수 있을 것 같다. 벌써 연극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고 있다.
‘배비장전’의 배비장 역을 맡은 조윤철 삼정식품 대표.© 실버종합뉴스
-연극 초보인데 주인공을 맡았다. 비결이라도?
처음엔 ‘방자’역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감독님(제작.기획감독 반진수)이 ‘너는 주인공을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 제 성격이 직설적인데, 감독님은 그걸 알아보신 것 같다. 생김새도 비슷하고 꼿꼿한 선비를 자처하는 배비장의 이미지가 어느 정도 닮아 맡기신 것 같다. 해 보니, 아무나 못 하는 역할이더라. 감독님은 역시 사람을 잘 알아보시는구나, 했다.
-실례지만 나이가…?
1960년생이다. 올해 공식 65세가 됐다. 어느덧 시니어가 돼 있더라. 큰 성공은 못했지만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봐서 큰 후회 역시 없다. 70이든 80이든 그 때라도 성공하면 젊은이의 성공과 다름없이 똑같이 빛날 것이다. KFC(햄버거 브랜드) 할아버지 볼 때마다 ‘저 할아버지는 70 다 돼서 성공했지’ 하며 지나간다. (KFC는 창업자 커넬 샌더스의 모형을 마스코트처럼 KFC 매장 앞에 진열해 두고 있다.)
-이왕 연극을 시작하셨는데, 앞으로 계획.
주변에서 여러 좋은 말씀들을 해 주신다. 시니어 모델 하라는 분도 계시고. 하지만 일단은 사업에 전념할 생각이다. 본업이 궤도에 올려지면 연극을 하며 인생3막을 열어볼 생각도 있다.
지난 4일 연기연습 중인 ‘배비장전’ 출연진. 기생 애랑역의 정서연, 배비장역의 조윤철. © 실버종합뉴스
-같은 시니어에게 해 주고 싶은 말.
직장에서 은퇴한 40 후반~50대에겐 창업.취업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나. 다들 하는 말이라 식상하겠지만 ‘미리 준비하라’고 말해 주고 싶다. 몇 해 전 유통 경험을 쌓으려고 유통업체에 지원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본인이 아무리 능력과 열정이 출중해도 업체에선 나이를 가장 먼저 본다.
지인이 7~8년 전 제 말을 듣고 자격증을 따 지금 종로의 큰 건물에서 시설관리팀장을 맡고 있다. 사무직 은퇴 후 재취업이 안돼 힘든 상황이었는데 소방안전, 전기.가스안전관리 자격증을 석달만에 따더라. 지금 62세인데 아주 안정적으로 잘 지내고 계신다.
(조윤철 대표는 ‘연극이 끝난 후’ 본업인 소스제조 사업이 탄력을 받아 내년부터 전국 마트에서 ‘산두리’ 비빔소스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때 다시한번 연극에 도전하며 ‘인생3막’을 열어갈 계획이다.)
‘배비장전’이 오는 20~22일 대학로 드림시어터(☎010-2218-3888)에서 매일 하루 두 번씩(오후 2:30/5:00) 공연된다.
유은영 기자
silverekn@silverekn.kr
출처 : 실버종합뉴스(http://www.silverekn.kr)